11/06
11월이다. 4월 말에 집에 왔으니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그 동안 내가 이뤄낸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이뤄내지 못함'에 대해서는 참을 수 있고 웃어넘길 수는 있다. 지금까지의 자신과의 '단절'이 그래도 어느 정도 나를 돌아보는 데에는 도움이 된 것 같고, 스스로 고민도 많이 해 보고 가치관도 많이 바뀌고 했으니까. 물론 그 덕에 내 속은 더 알 수 없게 되었고, 서로 모순되는 가치들이 그냥 같은 장소에 공존하고 있다.
'이뤄내지 못함'은 그렇게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움직이지 못함'은 꽤 큰 실책인 것 같다. 뭐, 굳이 따지자면 실책도 아니다. 내가 이런 타입이라는 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게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 그래도 하고 싶다고 계속 떠들어대던 것들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좀 뼈아프다. 언제부턴가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이걸 하면 뭘 얻고 뭘 잃을까와 같은 계산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다. 삶은 Engineering이 아닌데 말야. 그리고 그걸 알았다고 해도 잃는다는 것이 너무 두려워 움직이질 못했다. '내려놓기' 위해 휴학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아직도 나는 내려놓는 법에 익숙하지 못하다. 사람의 천성이라는 것을 고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확신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이 버릇만은 꼭 고쳐야 하는데. 다 떠나서 이건 나라는 인간의 다른 요소들과의 어울림을 생각해 보면.. '생존'이 걸린 문제인 것 같고. 내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요즘인지라, 이제는 이게 내가 내려놓지를 못해서 생기는 문제인지, 그냥 집에 박혀서 생겨버린 관성인지도 잘 모르겠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갈 수도 있었을 길을 내 손으로 너무도 많이 막아둔 것 같다.
그런데 이 생각도 언젠가는 바뀔지 모른다.
1년 전만 해도 나는 이미 걸은 길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 이게 문제다.
'언젠가는 바뀌기에' 결단을 못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