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자서전

12/31

Loomer 2012. 12. 31. 23:17

연말이다.


 올해는 유독 말로, 글로 표현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말보다는, 글보다는 그저 행동으로, 혹은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한 해를 통째로 보냈다. 철저하게 모든 걸 지우고, 모든 걸 부정하고, 모든 걸 비우려고 애쓴 해였다. 그리고 내적으로 사람이 많이 바뀐 해이기도 하고.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나는 정말 자신감이 넘쳤다. 이런저런 도전들, 여기저기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은 그 자체로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정말 그 당시에는 뭐라도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도취되어서 그랬는지, 나 자신에 속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하나도 알지 못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중앙집행위원장이라는 자리로 2012년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정말 되는 대로 다 달려들었고, 그게 즐거웠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나는 우리 학교라는 공간에서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걸 다 집어던지고 밧줄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그걸 스스로 자각한 순간, 이 자리에 대한 회의도 어느 정도 들었지만 이것보다 100배 정도는 더 크게 느껴졌던 것은 대학 입학 후 내가 걸어오던 삶의 노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부딪치면서 성장한다'라는 그 동안의 내 명제가 처음으로 완전히 실패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일은 정말 못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다.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 양쪽에서 모두 욕도 많이 들어먹었을 것이고, 계속 들어먹을 것이다. 실패 맞다. 이 시절은 아마 내가 포스텍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항상 떠올라 나를 괴롭힐 것이고, 이건 어쨌건 간에 내가 짊어져야 할 이 시절에 대한 반성으로서 계속 내 안에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휴학을 했고, 집이었고, 치료를 받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집에 왔고, 어떤 식으로 1학기 기간의 남은 시간을 보냈는지는 솔직히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너무 힘들다. 5~6월 무렵은 정말 악몽이었지만서도, 지금 와서 보면 그 시절의 나를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 그냥 그 시절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에 들어와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마 그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 후, 여름에는 조금씩 대장정이나 이공계 행사와 같은 기존에 쌓아올렸던 기억들을 다시 돌아보았고, 9~10월에는 홀로 여행을, 11월부터는 하고 싶은 공부들을 하면서 시간을 '지나가게 두었다'. 집 밖으로 나가서 보낸 시간은 극히 일부분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은 집에서 독서를 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정말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어떤 때보다도 그런 시간을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런 내 삶을 알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낸다고 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이 무의미한 시간이었으니까. '어떤 일이라도 즐기는 자세'보다는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그러면서 마음은 꽤 편해졌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몸도 많이 돌아왔다. 지금 와서 보면 예전의 어떤 때보다도 정말 시간이 훅 지나간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 해의 추억거리로 남길만한 '경험'이란 것 자체를 올해에는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먼 훗날의 내게 있어서 2012년은 그저 '공백'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필요한 공백이었다. 나 자신을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만 채우다가 비로소 나 자신으로 채워넣어야 함을 깨닫고 이를 위해 보낸 일종의 '휴지통 비우기'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이것저것 막 도전할 열정도, 그럴 체력도 많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도전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속이 비워지고 비워질수록 상당히 오래 전부터 내 안에 존재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어떤 불편한 덩어리는 좀 더 분명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주는 불쾌함도 더 커져갔다. 아마 나는 영영 이 덩어리를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이게 2012년에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일 것이다. 딱히 2013년에는 목표를 두고 싶지 않다. 그냥 매 순간 순간에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선택을 하고, 그것으로 즐거워하는 것. 깨닫는 데에 정말 오래 걸렸고, 이제서야 실천을 시작한 그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서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3  (0) 2013.01.13
1/08  (0) 2013.01.08
12/17  (0) 2012.12.17
12/08  (0) 2012.12.08
12/01  (0) 2012.12.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