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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가요제와 기성 가요 시장 간의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는 유재석이 나서서 직접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일까지 벌어져야 할 정도로 커지기도 했고, 가요제를 할 때마다 끊이지 않는 논란은 이제는 음원 제작자들이 가요제 시즌에 제작 자체를 기피하는 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데.
무한도전은 어디까지나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의도는 폄하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무한도전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지금 당장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의도와 상관없이 타코마 다리 마냥 대중가요의 중심축을 천천히 공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가요제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더 이상 인기와 수익이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수익이 인기의 부분집합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단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과 대중가요 음원의 지향점은 다르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은 '수익은 아무래도 좋은거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고, 대중가요 음원은 기본적으로 팔려고 만드는 음원이다. 그리고 팔려고 만드는 음원은 어찌 되었건 간에 인기를 얻어야 한다. 음원 제작자들의 불만은 수익의 선결조건인 인기의 상당수 지분을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들이 잡아먹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결과적으로 수익을 얻을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들을 무료 배포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트리밍으로 음원을 듣고, 그것도 순위권의 음원들만 주로 듣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순위에서 밀리는 것 그 자체가 수익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원 제작자들은 어떻게든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의 인기를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요즘의 대부분의 대중가요들은 더 이상 음원만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작곡가, 프로듀서, 소속사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을 무한도전이라는 소속사에서 내는 음원들이라고 생각하면 이건 애초에 공정한 게임이 될 수가 없다. 인지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그리고 무한도전 가요제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은 또 누구인가 하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작곡가나 프로듀서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이 누가 누구와 함께 작업되었는지는 기억할 것이지만, 요즘 유명한 대중가요들의 작곡가가 누구인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예외를 빼면. 따라서 버스커버스커 같은 그룹들은 무한도전 가요제 음원과 어느 정도 대등한 경쟁이 가능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정도'를 밟은 그룹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러한 점에서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은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고객인 한국 음악 시장의 특성상 어떠한 노래를 내더라도 성공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음반을 내는 기획사들은 근본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의 '박명수의 어떤가요' 논란은 이 전략에서 '곡의 Quality'가 빠져도 무방하기에 생긴 논란이다. 물론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은 대중가요로 내보낼 만한 Quality를 가지고 있고, 이 Quality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결국 음원의 인기를 가르는 것은 음원을 내놓는 쪽의 전략에서 갈리게 된다. 대중가요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무한도전 측이 자신들은 아스팔트 깔아가며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때, 혼자 비행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미꾸라지는 물을 흐리게 만드려는 의도가 없다
지금까지의 내용들만 봐서는 무한도전 가요제를 공격할 만한 수단은 없다. 위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무한도전 가요제는 기성 제작자들이 쓸 수 없는 트리키한 전략으로 승리한 것이고, 이걸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무한도전 측이 새로운 룰을 사용했지만, 금지된 룰을 쓰지는 않았다. 심지어 유재석의 사과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의도까지 좋다. 그런데 왜 무한도전 가요제가 그만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을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무한도전 가요제 논란을 바라보는 관점들의 대부분은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부분에서 끝난다. 지금까지 정리한 내용과 같은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무한도전 가요제의 잘못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이 한 선택들이 대중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하나 악수로 작용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한마디로, 무한도전 가요제가 계속되면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 자체가 저해된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측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라도, 무한도전 가요제의 손쉬운 승리가 음원 제작자들의 창작욕을 꺾는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다. 특히, 인디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밤낮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쳤는데, 공부 하나도 안한 학생한테 진 것이랑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그 학생은 소스를 갖고 있고, 자신들은 소스를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니 화날 만도 하다. 만약 이런 인디 뮤지션들이 비록 이들을 이기지는 못해도 절대적으로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라면 그래도 그럭저럭 게임이 될 것이다. (20대에게 큰 인기를 끄는 어쿠스틱 음악들이 이런 부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으로도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열등생은 교수조차도 관심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 음악 시장에서 교수의 역할은 대중들이 맡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지금까지의 비유가 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 음악 시장에서는 '열등생' 역시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음악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위축되어 있는 것에는 근본적으로는 음원 유통사들이 원인이지만, 이러한 다양성 부족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나 대중가요 안 들어' 하면서 어쿠스틱 음악 듣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 부족을 해결하려면 일단은 Pool이 넓고 봐야 한다. (여담으로, 다양성 부족의 원인은 그 자체만으로도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이러한 Pool의 크기와 무관하게 흘러가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갈수록 이 Pool 크기와의 상관관계가 커져가고 있다. 2000년대의 대중음악 시장의 기본 전략이었던 '위에서 트렌드를 만들어 가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잘 먹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제작자들은 아래에서 될성부른 싹들을 집어 이를 자신들의 것을 만들어감으로써 트렌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버스커버스커와 최근의 아이유 3집이 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예시이다. 이들의 성공은 곧 많은 이들을 통해 벤치마킹될 것이고, 지속력을 얻게 될 것이다. (단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돌들이 지금까지도 새로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식의 경향이 계속된다면 인디 씬이 식물 역할을, 메인스트림이 동물 역할을, 소비자들이 양 쪽 모두를 소비하되 동물에 보다 비중을 두는 인간의 역할을 하는 피라미드형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고, 실제로 대부분의 세계 음악 시장들은 이러한 형태를 띄고 있다.
무한도전의 전략은 이러한 구도에 완전히 어긋난다. 무한도전의 전략을 생태계에 비유하면 식물의 역할도 가능한 동물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식물과 동물을 잡아먹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생태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닌 이상에야 식물의 역할을 하는 동물을 가까운 곳에서 매우 쉽게 구할 수 있으니 굳이 식물을 찾아다닐 필요 자체가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열등생'인 식물들을 재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잊혀질 것이고, 무한도전에 의해 점차 잡아먹힐 것이다. 무한도전 측이 생태계를 살리겠다는 의도를 갖고 먹이나 공생 관계를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지만,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게 하고 싶어서 흐리던가?
휩쓸리지 않으면 논란이 없어진다
결론은, 무한도전 가요제의 현재 전략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본인 역시 확실한 Solution을 내놓지는 못하겠다. (가요제 폐지를 제외하면, 인디 뮤지션들과 적극적으로 작업한다던가, 음원을 무한도전이 아닌 각각의 뮤지션들 명의로 내놓는다던가 등의 방법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방법들은 완전하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대중음악 생태계의 변동 자체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 만큼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한도전이라는 외래종을 대중음악 생태계에 잘 적응시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들이 변해야 한다. 관심을 갖는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소비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좋은 물건을 찾아 여기저기 품팔이를 하는 것처럼 좋은 음악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닐 줄도 알아야 한다. 무한도전 가요제의 음원들을 좋아하고 이에 열광하더라도 이를 가지고 다른 제작자들에게 '이것밖에 못하냐?'라고 폄하하지 말아야 하며, 무한도전의 본업은 음악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음악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라는 것을 알고, 무한도전 가요제 역시 이들 덕에 탄생될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대중문화는 결국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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