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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세월호 참사를 보는 공학도.

Loomer 2014. 4. 21. 16:36

 학부생 시절, 어떤 교수님께서 '공학은 보수적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는 어떠한 경우라도 공학에서는 '그게 실제로 가능한가?', '왜 그렇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아직 햇병아리 공학도인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 질문은 랩미팅에서 교수님께 수없이 듣는 소리이기도 하고, 전공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많이 던져본 질문이기도 하다. 이 길에 발을 들인 지 5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이런 접근법에 몸에 배어 때때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이러한 자세는 확실히 공학 외적인 부분에 대한 내 태도에도 확실히 영향을 미쳤다. 대학에 갓 입학하던 무렵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GMO가 그냥 무작정 위험하다고 믿어 이 쪽 지지자들을 생각 없이 공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지금은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 논쟁거리가 던져지고 각 진영의 입장을 모두 듣게 되면 각각에 대해 전후 사정을 반드시 따져보게 되고, 신빙성을 한 번쯤은 의심해본다. 그러다 보니 결론을 내리는 시간은 상당히 늦춰지고(그래서 나는 내 '뇌'의 정치적 색깔은 없다고 믿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견들에 쏠려 흐름을 못 읽는 경우도 참 많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내리게 되는 결론에는 내 스스로가 만족하게 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수많은 한국 사회의 병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디서 읽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한민국 그 자체를 세월호에 비유한 댓글도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병폐들이 왜 일어났는가를 짚어보는 스스로를 보면서 확실히 내가 이런 이슈도 공학적으로 접근하려 한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했다. 그러면서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공격해야 할 당위성을 느끼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은, 어느덧 내가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의 비중이 예전의 나에 비해 꽤 많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단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한편으로는 그러면서 내가 참 차가운 사람이긴 한가 보구나 하고 다시 한 번 자조하기도 했다. 슬픔을 모두가 짊어져야 할 의무는 없지만, 지금의 나는 슬픔 이전에 앞서 이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생각들을 하며 참사가 일어난 초반 며칠을 보냈으니.


 여기까지는 그저 개인적 성향에 대한 이야기었다면,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공학도로서 앞으로 계속 마주치게 될 '무지와의 싸움'에 가까운 내용일 것이다. 이번 참사를 둘러싸고 나타난 문제점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곱씹어 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슬픈 상황인 것은 맞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상황에서도 내가 배워 온 길에서는 참과 거짓이 뒤바뀌지 않는다. 물론 과학이나 공학에서의 참과 거짓은 여러 이유로 뒤집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러한 증거가 확실히 밝혀지고 난 뒤에서다. 아마 이것이 공학의 보수성이 가진 참뜻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한창 생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배 속에서 메세지를 보냈다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믿을 래야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전자기파가 투과할 수 없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정말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그래서 그 뒤에 페이스북에 실종자들이 메세지를 보냈다느니, 카톡이 안 되니까 페북 메세지를 날렸다느니 하는 건 단 하나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물리적으로 전자기파가 투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번에 납득할 수 있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북 메세지로 날아온 구조 요청 메세지는 그래도 진짜라고 우르르르 몰려서 주장한다면 솔직히 나 혼자로서는 절대 그들 모두를 설득시킬 수 없다. 그들을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런 주장을 계속 하는 것을 가만히 두는 것은 더욱 나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난 자신이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신뢰성 있는 생각들을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 내 일이자 책임일 것이고, 그 책임은 어쩌면 랩미팅에서 하는 발표 등으로 이미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성적인 생각들을 다른 이들의 감성을 눌러버리는 것 외의 방법으로는 납득시킬 자신이 없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꼰대의 한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변해간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해 나갈 수 있게 된 상황들이 내 스스로의 눈에 들어오게 되니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는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점차 과거의 자신을 잃어간다는 두려움도 든다. 새로운 뭔가를 배우면서 '배우기 이전의 자신'의 시선을 잃어버린 것이다.(잃어버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인 공감 능력이 그 중 하나인 것 같다.) 아까의 사례에 빗대면 페북 메세지를 진실로 믿는 이들을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항상 내가 고민하는 문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는다. 너 늦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이 문제에 답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고, 고민 없이 살아가다가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꼰대가 될 것이다. 결론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감정적인 이입을 모두 제거하고 이 사건을 보아도 이런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최근에 너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에 반성하며, '모른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수준의 식견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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