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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이방인

Loomer 2014. 10. 28. 16:50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그리 긴 소설도 아니고, 그 전에 읽던 순수의 시대나 그리스인 조르바보다는 직선적이고 몰입감이 있는 줄거리다 보니 앞의 둘에 비해 엄청난 속도로 다 읽게 되었다. 뭐... 여기까지였다면 내가 이렇게 글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만. 소설을 다 읽고, 뒤의 역자 해설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작품에 대한 해설들을 접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작품 해석이 주류로 자리잡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소설을 다 읽는 그 순간까지 내가 뫼르소에게 갖고 있던 인상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상과 상당히 달랐다. 


 일단, 뫼르소가 '이방인'인 이유가 주류적 감성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면 나도 어느 정도는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1부에서의 뫼르소의 행동들이나 생각들에서 그렇게 큰 '부조리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나 초연할 수 있던 장면에서부터 '이 사람은 비정상이구나'라는 생각보다는 '아, 저럴 수도 있겠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그는 하루하루를 되게 무덤덤하게 보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일에 대해서만 충실하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나를 닮았다.


  아마 그랬기에, 2부에서 보여지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분석당하고 왜곡되어지는 뫼르소에 더욱 동정이 갔던 것 같다. 슬픔의 부재가 사형 선고의 이유가 되고, 햇빛이 살인의 동기가 되었다는 진실도 사형 선고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재판장에서 그러한 내용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러한 사실들을 일일이 머리 속에 기록하여 처리할 겨를도 여유도 없어진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러한 순간들을 거쳐 뫼르소에게 비로소 동정의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면, 나는 또 그렇지 않았다. 어쨌건 간에 뫼르소는 진실을 택했고, 그 대가로 죽음을 얻었다. 그리고 본인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한 편의 부조리극은 끝나버린 것이다. 마지막에 비로소 뫼르소는 자신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뫼르소의 이야기였을 뿐,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또 하나의 뫼르소가 된 것 같았다. 다시 말하면 그처럼 정말 무감각하고 무관심한 관찰자의 자세로 이 소설을 읽었다고 할까나. 최근 몇 년 들어 계속 '그냥 그러려니'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러면서 나도 이렇게 변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는 걸 이 소설을 읽을 무렵에야 깨달았다고 할까나. 그런데, 아직까지는 이 길의 방향을 틀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고칠 수 없는 운명이란 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나는 이 길에 계속 올라타 있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 정해진 결말을 맞을 것이고, 만약 그런 운명이 존재하지 않고 카뮈의 생각과 반대로 내가 내 삶을 '조리 있게' 개척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면 난 이 길 위에 있는 걸 만족하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재확인시킨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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