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잡설

개인의 과거

Loomer 2012. 9. 23. 22:17

 박근혜 후보에게 있어서 가장 큰 논란은 현재로서는 '과거사 청산'에 있다. 여기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느니 싫어하느니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저 '과거사' 그 자체만 놓고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일단 역지사지의 자세에 의하여 박근혜 후보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그녀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성과나 과오를 남겼건 간에 어쨌든 아버지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를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온전한 가정이었다면. 물론 스탈린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의 과오를 모두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였고, 이는 대중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반성'으로 통했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반성은 과연 통할까?


 솔직히 나는 안 통할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박근혜 후보가 반성을 진심으로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문제이다. 박근혜 후보의 입장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비록 특정 집단에 국한되어 있지만 '우상'으로 통하는 사람이고, 무엇보다도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내가 박근혜 후보라면 아버지의 과오는 과오로서 인정하고 싶겠지만, 부모님을 정상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잃고, 언제까지나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버지의 업적과 과오를 완벽하게 분리해서 생각하지는 못할 것 같다. 중요한 건, 이게 박근혜 후보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그녀의 과거사 청산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제각각이겠지만, 최소한 '대중' 중 하나인 나는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대중 앞에서 과거사에 대해 '죄송하다'라고 사과를 해도 이게 진정한 사과로 비춰지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의 그녀의 행적이나 발언들로 그녀가 아무리 사과를 한들 믿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나는 박근혜 후보가 정말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발언을 해도 믿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후보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물론 공인으로서의 책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나는 적어도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에서만큼은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하라고 말할 위인이 되지는 못한다. 일단 나 자신만 해도 지금까지 살면서 저지른 과오들을 온전히 반성하고 떨쳐내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까 박근혜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장막 하나를 걷어낸 느낌이 든다. 이게 좋은 판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는 앞으로 그녀를 평가함에 있어서 '과거사'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조금은 덜 얽매일 것 같다. 물론 박근혜 후보가 내놓는 정책들이나 그녀의 예상되는 국정 스타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색깔이 묻어나오는 것은 그녀 개인의 과거사 청산과는 별개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개인의 심리선상에 놓여있는 과거사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그 당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분명히 다르고 그 일들의 대부분은 지금의 이 세상에서 그대로 펼쳐질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저냥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는 잘못한 점이 있다' 정도만 말해도 그냥저냥 받아들일 생각이다. 개인의 판단과 정책의 결정은 다른 것이니까. 


 이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후보라는 단 한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생각이다. 나는 유신정권 시절 있었던 과오들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이런 색채가 묻어나는 정책을 지지할 생각도 없다. 그저 박근혜 후보가 아무리 잘못했다고 말한들 현재 상황에서는 대중들이나 그녀 본인조차도 그걸 진심으로 생각하지 못할 것 같고, '과거사' 그 자체에 대한 논란에서는 기자회견 이후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후보의 심리가 어떨까에 대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이 세상이 정녕 박근혜 후보에게 과거의 죄를 묻는 것이 맞다면 그걸 반대할 생각은 또 없고.(과거에 대해 사과하는 것과 죄를 묻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되고, 이 쪽으로는 솔직히 깊이 생각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는 그 쪽의 선거 캠프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정책들로 판단할 것이다.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념찬 청춘>을 읽고  (0) 2012.12.01
Top밴드2에 대한 생각  (3) 2012.10.17
싸이에 대한 생각.  (0) 2012.10.05
안철수 출마  (0) 2012.09.19
  (0) 2012.09.1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