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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개념찬 청춘>을 읽고

Loomer 2012. 12. 1. 00:47

 요즘의 내가 예전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점이 있다면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독서의 목적이 독서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그저 내가 원하는 걸 공부하기 위해서에 더 가깝지만, 그래도 그저 지켜만 보는 것보다는 직접 찾아보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책을 하나 하나 읽어갈수록 깨달아가고 있다.


 오늘은 조윤호 씨가 쓴 <개념찬 청춘>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쨌건 간에 정치적 성향이 담긴 책임은 틀림없었고, 이런 책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최근에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제 내가 책 한 권에 모든 것이 확 변할 정도로 심지가 없는 사람은 아니게 되었구나' 정도. 생각해 보면 대학에 막 붙고 할 것이 없이 띵가띵가하던 2008년 이맘때, 나는 네이트 뉴스에서 나오는 기사들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거기에 되게 쉽게 휩쓸렸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내 정치적 성향이 확 기울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나의 정치적 성향은 아직 '없다.') 아마 예전과 달리 보다 많은 것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나의 가치관이 자리를 예전보다 확실히 자리잡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는 이런 가치관 같은 것들을 내가 '직접' 고르거나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졸작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을 한 번에 내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세워진 나만의 가치관에 의해 나는 이 책에 휩쓸리지 않았다. 물론 이 책이 불쏘시개 마냥 쓰레기 같은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보다 조금 더 배운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의 글에 감정적으로는 넘어가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점이 작가가 원하는 '개념찬 청춘'이 아닐까 싶다. 아마 작가는 내가 작가의 생각을 반대한다고 해서 책의 표현 마냥 바로 짱돌을 던지지는 않을 테니까. 작가도 그런 순간적인 휩쓸림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결론인 '20대를 대변하는 사람을 찾지 말고 20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에는 동의한다. 김예슬보다 노영수를 지지한다는 것도 동의한다. 하지만 결론만 동의한다. 과정까지 동의하기에 나는 작가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작가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청소년 시절부터 열심히 정치적 사항들을 살펴본 것도 아니고, 작가에 비하면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학력에서는 기득권층이고, 작가가 원하는 이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가 원하는 '연대'라는 것이 나는 점차 사라져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20대에게 있어서 큰 약점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의 20대가 나이를 먹는다고 이들이 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조금 강한 케이스겠지만(확실히 나는 내 주위 또래들보다 훨씬 더 개인주의적이다.), 대부분의 20대는 예전 세대들과 달리 '힘을 모을' 일 자체가 별로 없었기에(월드컵은 '모인' 것이지 '모은'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를 기본 바탕으로 깔아두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건 사람 성격 고치는 것처럼 정말 힘든 일이다. 반값 등록금 문제를 예로 들면, 나는 등록금을 장학금으로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사람들의 문제 의식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동감할 수는 없다. 이건 '아, 이 생각이 이러이러해서 옳구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다른 예로, 비정규직 공장 노동자들의 일이 힘들다는 것은 나는 직접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뛰어봤기 때문에 동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생활히 힘들다는 것은 아직 내가 모든 재정을 내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있기에 동감할 수 없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것'은 이성의 영역이고, '동감한다는 것'은 감성의 영역이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가는 상황이 정치적 문제에서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고, 이 둘 중에 어떤 것을 고르냐는 것의 문제는 결국 이성과 감성의 싸움이다. 지금도 우리나라 어딘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을 노동자들 같은 사람들은 이 이성과 감성이 일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이성으로 동정할 수는 있지만 감성으로 동정할 수 없을 것이다. 느껴보질 못했으니까. 답답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눈물과 함께 풀어내면 후련해지는 것처럼 내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위로할 수는 있을 테지만, 그들이 100%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 내가 100%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 사이의 교집합은 있을 수 있다.) 지금의 20대들에게 이런 생각을 적용하면, 우리들의 '감성'은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연대가 쉽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보통의 대학생들과는 매우 다른 대학 생활을 겪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만.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20대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연대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직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 문외한인지라 이런 내 생각들을 어떤 식으로 정의내려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거창한 과정 없이 뽑아져 나오는 생각이기에 바꾸는 것은 더 힘들 것이다. 감성에서 뽑아져 나오는 생각은 사람의 성격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으니까. 이 글은 그런 점에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책의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적고 내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 물론 나도 이걸 이해하고 있고, 딱히 이 글을 읽는 사람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도 이런 생각 자체가 변할 수도 있고. 이 글은 어디까지나 '순간의 기록'으로서 존재하는 것일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용도로서. 그리고 현재의 나를 나타내는 용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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