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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싸이에 대한 생각.

Loomer 2012. 10. 5. 02:24

방금 전까지 서울광장에서 싸이의 콘서트를 직접 보고 왔다.

거의 12시까지 진행된 콘서트였고,(더 했을지도 모른다) 그 동안 싸이는 정말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싸이의 성공에 대한 내 생각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싸이는 대한민국의 종합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아야 성공할 수 있음을 직접 보여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싸이는 '뮤지션'으로는 성공한 것이 절대 아니기에 K-Pop의 세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첫 번째 생각부터 정리해 보면, 싸이는 어찌 되었건 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해 왔다. 비록 음악적인 혁신이나 뮤지션으로서의 특출남을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싸이는 지금까지 6장의 정규앨범을 내는 동안 자신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음악이 담긴 앨범은 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싸이는 자기복제만을 한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다양한 시도를 진행해 왔다. 힙합의 테이스트가 강했던 초창기부터 록이라고 말해도 상관 없을 'We are the One'까지. 그리고 그의 히트곡들은 확실히 수많은 장르들이 대중성과 함께 적절히 녹아있는 'Pop'의 정의에 부합하는 음악들이다.(물론 솔직히 말해서 최근의 싸이-유건형 콤비는 예전에 비하면 힘을 잃은 것이 사실이다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이것을 해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싸이는 음악적으로 특출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그걸 실천하고 있다.

 '강남스타일'이 성공한 것은 그의 '종합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이 빛을 발한 결과이다. 물론 싸이 혼자서 이뤄낸 것은 절대 아니겠지만(여담이지만 대한민국은 음반에 있어서 가수 외의 존재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는 '뮤지션'이기보다는 '퍼포먼서'에 가까운 가수이고, '강남스타일'은 그 특징을 극대화시킨 노래이다.

 

 여기서 두 번째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다시 말하면 싸이는 '뮤지션'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외국인들, 특히 영미권에서 느끼기에 싸이의 음악은 굉장히 신선할 것이다. 해외의 대세를 쫓아가다 보니 소수를 제외하고 '본인만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실패한 아이돌 가수들과는 다르게 싸이의 음악은 싸이의 맛이 가득하고, 이건 기존의 영미권에는 없던 새로운 음악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 뿐이라는 것이다. 싸이의 음악에는 '싸이스러움'은 가득하지만 그것을 이루고 있는 재료와 그 조합은 전혀 새롭지 않다. 대중음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여러 흥행 요소들 속에 '싸이표 특제 소스'를 추가한 것이 전부이다. 물론 그는 '뮤지션'이 아니기에 그에게서 Animal Collective 마냥의 신선함을 기대해서는 곤란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런 신선함으로 어필하여 오직 '뮤지션'으로서만 영미권에서 흥행에 성공했다면, 외국인들은 한국 음악을 '조금 멀리 떨어진 위성 도시'가 아닌 '새로운 광맥'으로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 경우 직접적으로 성공한 뮤지션뿐만이 아니라 한국 음악 씬 자체가 주목받았을 것이다. 물론 싸이의 성공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니까. 정말 만약의 경우이지만, 만약 싸이의 후속 앨범이 순수히 '음악'으로서 성공한다면, 한국 대중음악 시장 자체게 주목받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싸이의 소비자'들은 이미 그런 것은 굳이 바라고 있지 않을 테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싸이가 '월드 스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싸이의 성공이 K-Pop의 성공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싸이'라는 한 아티스트로서의 성공인 것이다. 싸이의 뒤를 잇는 후속타들이 연달아 터졌을 때, 그 때야 비로소 K-Pop의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싸이는 '한국 최초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아티스트'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꽤나 별나지만 역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P.S 솔직히 말해서 싸이의 성공을 통해 가장 반성해야 할 것은 소위 말하는 '인디 신'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싸이가 음악만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기에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겠지만. 이쪽 뮤지션들이 만약 세계로 진출해서 성공하고 싶다면, 최소한 '싸이표 특제 소스'에 걸맞는 자신들만의 비기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재 이 곳에는 그걸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이 '주류' 레벨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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