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Fantasy (2013) - 진보


 나는 한국식 R&B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진보는 한국에서 참 희소성 있는 뮤지션이고, 무엇보다도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 매우 많다는 점에서 정말 다재다능한 뮤지션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다재다능함은 전작 <Afterwork>에서 잘 드러났기도 했고. 이번 앨범은 Fantasy라는 컨셉에 걸맞는 느낌으로 모든 소리 하나하나를 전작과는 꽤 다르게 바꿨다. 전작이 둥글둥글했다면 이번 앨범은 꽤나 날카롭다. 무엇보다도 보컬의 비중이 전작보다는 조금 줄어서 그럴까, 확실히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 앨범은 Fantasy라는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소리의 질감 하나하나를 정말 세심하게 신경쓴 점이 마음에 들고, 거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앨범을 구성하는 주요한 소리들은 시종일관 금속성을 띄거나 몽롱한 톤을 유지하면서 구름 위에 떠 있을 법한 진짜 Fantasy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처럼 바뀐 점이 꽤 많지만, 이 앨범이 진보의 음악이라는 느낌은 남아 있다. 솔직히 이게 진보의 보컬이 남아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이런 식의 '소리를 건축하는 흑인음악'을 하는 뮤지션이 국내에 거의 없어서 그냥 이게 진보의 음악으로 들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직까지는 이 정도로 할 줄 아는 한국 뮤지션은 진보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쪽으로는 심히 문외한이고,그래서 이 앨범이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Overgrown (2013) - James Blake


 많은 이들의 기대를 업고 있던 James Blake의 2집. 뭐 결과적으로는 이 앨범은 순풍을 타고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다만, 그의 고향과도 같던 덥스텝과는 확실히 거리를 두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호불호를 가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CMYK는 정말 대단한 싱글이었으니까. 


 어쨌던 James Blake는 덥스텝과 소울 중 소울의 비중을 더 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길을 확정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앨범이다. 한 때 포스트 덥스텝 뮤지션의 대표주자로 불리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 앨범에서 그는 곡 전체의 질을 위해서라면 덥스텝을 희생하는 것에 거리낌이 전혀 없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전자음이 잘 가미된 매끈한 팝 앨범이 되었고, James Blake의 이런 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라면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앨범일 될 것이다. 다만 포스트 덥스텝 뮤지션으로서의 James Blake와는 이 쯤에서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고. 내 경우는 이번 앨범이 어쨌건 잘 뽑아져 나왔다고 생각하기에 만족은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그의 능력이 덜 발휘되는 것 같아 아쉽다.




Mosquito (2013) - Yeah Yeah Yeahs


 <It's Blitz!>를 통해 멋지게 변신에 성공한 Yeah Yeah Yeahs의 다음 행보는 개인적으로 꽤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첫 싱글 Sacrilege가 나왔을 때, 생각보다 차분한 곡이 나왔기에 조금 당황했었다. 그래도 강렬한 맛은 남아 있었기에 기대는 꺾이지 않았고. 그리고 정규 앨범이 통째로 나오고, 이걸 몇 번 들어보니.... 뭐 얘네들도 결국에는 호불호가 갈릴 법한 앨범을 들고 나온 것 같다. 일단 그와는 별개로 이 앨범은 빌보드 Top 10 안에도 들면서 히트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앨범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들이 '어두워졌다는' 것 같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색깔에 비유하면 되게 강렬한 원색들을 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곡들이 전반적으로 한 단계씩 차분해졌고, 원색적이라고 느껴지던 이들의 전작들에 비하면 이번 앨범이 갖고 있는 채도는 훨씬 낮다. 2집에서 3집으로의 변화가 에너지를 잃지 않으면서 재료를 바꾸는 식이었다면, 3집에서 이번 앨범으로의 변화는 재료를 바꾸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다른 곳에 분배한 느낌이다. 가장 예전의 이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3번 트랙 Mosquito도 과거만큼의 에너지는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런 변화 덕에 Karen O의 팔색조 보컬은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고, 바뀐 스타일도 생각보다는 잘 소화하고 있다.


 다만, 이 앨범은 내가 Yeah Yeah Yeahs를 즐기는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들고 나왔다는게 아쉬울 뿐이다. 페스티벌에 방방 뛸 법한 노래들보다는 어두운 플로어에서 몸을 흔들 법한 노래들로의 변화는 전자를 이들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했던 내 입장에서는 못내 아쉽다. Heads will roll 같은 싱글이 갖고 있는 원색적인 강렬함을 좋아하던 나이기에 그런 느낌이 사라진 이번 앨범은 좀 아쉽게 들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앨범 커버는 솔직히 좀 구리다.




Comedown Machine (2013) - The Strokes


 솔직히 이들의 지난 앨범 <Angles>은 너무 '되는 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최초로 모든 멤버가 작곡에 참여했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도 수록곡들의 질이 너무 천차만별이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그 간극이 메워지기를 바랐고, 이번 앨범은 어느 정도는 이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들고 나왔다. 물론 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2000년대 초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을 주도하였고, 록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밴드라는 걸 잊어야 한다. 어쨌건 전작보다는 나은 앨범을 들고 왔다.


 이들이 구사하는 장르가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었던 만큼, 뉴웨이브스러운 스타일로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상되는 바였고, 이번 앨범은 이를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정말 난잡함의 끝을 달렸던 전작과 비교하면 이번 앨범은 어느 정도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번 앨범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어느 정도 정립하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아직 그 완성도가 65% 정도에서 그치는 것 같다. 스타일의 굴곡은 사라졌지만 곡의 호불호에 대한 굴곡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전작보다 나은 앨범을 들고 온 것은 확실한데,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는 것도 확실하다. 이들은 데뷔 초부터 너무 많은 짐을 떠안았던 그룹이고, 지금의 과정은 그 짐들을 내려놓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번 앨범을 통해 '성장통의 시기'는 지난 것 같고, 다음 앨범 쯤 되면 이들이 새로 미는 색깔이 어느 정도 정립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는 든다.




Holy Fire (2013) - Foals


 워낙 오래 듣다보니 2월에 나온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5월에 쓰는 이 글에 실리는 영광 아닌 영광을 이룩한 앨범. 요즘 이쪽 신에서는 이 앨범이 가장 잘 나가는 앨범인 것 같다. 실제로 앨범 자체도 꽤 준수한 편인데, 무엇보다도 Foals는 이 앨범을 통해서 자신들의 색깔을 확실히 정립하는 데에 성공한 것 같다.  첫 싱글인 Inhaler는 내가 올해를 통들어 가장 많이 들은 싱글일 것 같고, 이 앨범 자체도 꽤 많이 들었다. 


 2집에서부터 자리잡기 시작한 이들의 스타일은 이 앨범에 와서는 확실히 무르익었다. 이번 앨범에서 이들은 방법론 자체에는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과거의 방법론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나아간 것 같다. 곡들의 기승전결이 명확해졌고, 가끔은 너무 튄다고 느끼던 특유의 기타 톤(이 톤이 수많은 댄서블한 록을 구사하는 밴드들의 훌륭한 Reference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만)을 비롯한 음색들은 적절한 선에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물론 가끔은 이게 차분하게만 들리기도 해서 아쉽게 다가올 때도 있다) 이들이 이번 앨범을 통해 '변화'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이번 앨범을 통해 '성장'했다는 것 이 팍 느껴지는 대목이랄까. 다만 조금 더 파워풀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이 앨범은 이들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작품이 될 것 같지만, 이 앨범이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까지는 아직 들지 않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속된 말로 '쩌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은 여기서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들이 장수하는 뮤지션으로 남게 되더라도 이들의 Discography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앨범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음악적 취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즘 신보들 이야기  (0) 2013.10.30
Reflektor - Aracde Fire  (0) 2013.09.10
요즘 들은 것들.  (2) 2013.02.06
Galaxy Express (2012) - Galaxy Express  (0) 2013.01.14
Lonerism (2012) - Tame Impala  (0) 2012.11.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