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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과학과 신학

Loomer 2015. 3. 28. 19:10

 과학철학 Study 모임에서 과학과 종교라는 테마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그 자리의 대다수의 의견은 결국 과학이 발전하여 종교의 영역으로 여기지던 곳들을 점차 침식할지언정, 개인의 믿음이라는 부분만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던 것 같다.


 일단 종교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인정하자. 그렇다면 신학은?


 역사의 흐름만을 짚어본다면 초자연적인 현상, 즉 신학으로 설명하려 들던 여러 현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과학으로 대체되어 왔고, 적어도 이러한 측면에서만은 이제 신학이 설 자리가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신학이라는 학문이 그런 것만을 다루는 학문은 아니지만, 처음에는 과학에게 자신의 위치를 조금씩 잃었고, 과학을 통해 정립된 체계를 어떻게든 자신의 교리에 맞춰넣으려는 성격 자체는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신학이라는 체계는 현 시대에서는 그 한계가 너무 명확하지 않은가?


 ...라는 것이 그 당시의 내 의견이었고, 그 자리에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좀 더 살펴보았는데, 내 생각이 너무 좁은 생각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다 떠나서 비록 서술된 언어는 다르지만, 천천히 읽어가고 있는 한스 요하힘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를 통해 중세 후반기부터 이러한 생각이 전개되고 있었고, 그 사유들을 다 따라가지도 않은 채 나는 내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만 저런 이야기를 했던 셈이었다. 


 결국 신학이 '바로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신학의 정의는 '신이 인간과 세계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국어사전에 따르면) 내가 저 당시 생각했던 신학의 범위와 비교하면 이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은 정의이고 이에 따르면 신학은 말 그대로 '종교에 맞춰진 인문학 전반'에 가까운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격한 곳은 이 중 빙산의 일각에 불구하고, 그 곳이 무너진다고 신학 전체가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2. 개요만 좀 찾아봐서 정확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결국 신학의 본령은 성서의 해석에 있는 듯 하다. 애초에 성서의 해석이라는 것은 과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다. 위에서 과학을 통해 정립되는 새로운 체계들을 신학은 어떻게던 자신의 체계가 과학에 모순되지 않도록 맞추려는 시도를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일단은 성서에 모순되지 않는 해석을 찾아내는 문제이다. 성서의 내용들이 수학에서의 공리들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작업은 한계에 부딪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그 한계를 피하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3. 중세 후반기부터 신앙과 이성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은 철학자(이자 신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고, 그러한 경향은 둘을 분리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앞서 언급한 <세계철학사>에서는 독일에서 그 당시 유행했던 신비주의 사상을 신앙이 이성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의 한 예로 들고 있다. 그런 관점을 여기에 적용해 보면, 신앙이 이러한 방법론에 따라 '이성과 분리된 영역'만을 지속적으로 다룬다면 과학과 충돌할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결국 문제는 신학과 과학의 영역 싸움인 것 같다. 신학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던 많은 것들을 과학이 점차 대체해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잃어가는 신학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뛰어난 신학자가(물론 과학에 대해 무지하지 않은) 한 분 정도 나와 신학의 영역을 재정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신학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길일 듯 하고, 신학을 순수한 인문학으로 분리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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