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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한 가장 생산적인 활동 중 하나는 한스 요하힘 슈퇴리히의 <세계철학사>를 읽은 것인 듯. 철학 입문서로는 상당히 괜찮은 책인 것 같다. 다만 제목은 세계철학사지만 서양 외의 철학은 사실상 맛보기로만 다루는 정도.


이거 읽으면서 주로 한 생각들.


1. 신이라는 것이 참 매력적인 개념은 맞나 보다. 당장 중세 후반부터 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슬슬 나타나기도 하지만(덕분에 신학에 대한 편견을 이 책으로 많이 깰 수 있었다), 철학에서 신앙은 사실상 아직까지도 완벽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당장 이성을 추구한다던 근대 철학자들 다수는 신의 존재 증명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신은 왜 악을 창조했는가?'라는 문제에 매달렸음. 철학사에서 '개인'을 처음으로 부각한 사람 중 하나인 키르케고르도 독실한 신앙인이었고. 


2. 어느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려면 결국 철학을 알아야 한다. 대표적으로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라는 암울한 시대에서 등장한 실존주의라던가.(이러한 점에서 20세기 초반의 여러 문학 작가들을 자신의 빠로 만든 니체는 시대를 '직접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말 대단하다.) 다만 한 시대의 정신적 흐름 자체를 대표하는 철학이지만 철학이 딱히 최상위에 있지도 않다는 것은 새로웠음. 예를 들어 칸트는 뉴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나. 공간-시간을 연결시킨다는 상대성 이론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철학적으로는 베르그송 등에 의해 이전부터 등장했다거나. 아무튼 '철학이 시대를 설명하는지, 철학이 시대를 만드는지'의 논쟁은 상당히 흥미로울 듯 하다.


3. 어떤 학문이던 결국 그렇겠지만, 철학 역시 전대들이 이것저것 다 해먹다 보니 현대로 갈수록 난해해지는 듯. 이 책의 장점이 한 철학자의 사상의 '큰 틀'을 쉽게 잘 그려낸다는 것인데, 현대로 갈수록 이것도 어렵다.(특히 현상학과 얽힌 후설이나 하이데거 등은 지금도 그 틀조차 제대로 이해한 건지 잘 모르겠음.) 확실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다른 분과학문들이 파생하는 모습을 보면 철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는 것에 수긍하게 된다. 


4. 이번 학기에 과학철학 스터디를 하면서 완벽한 체계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됨.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전대나 동시대의 철학자들을 까내리면서 화려하게 등장하니... (특히 볼테르, 쇼펜하우어, 칼 포퍼 등은 진짜 현대판 키보드워리어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애초에 나는 그저 '내가 즐거워지면 된다'에 가까운 생각을 지니고 있어 완벽한 체계라는 것에는 무관심하다. 다만 이러한 생각이 과학을 공격하면서 탄생한 것이 과학철학인데, 아직 이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주위에 생각보다 상당히 많더라.


5. 솔직히, 이 책에서 가장 깊게 와닿은 문구는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논리와 설교는 결코 설득하지 못한다 (...) 철학과 종교는 강의실에서는 큰 역할을 하겠지만 구름이나 훤한 풍경, 흐르는 강물 앞에서는 결코 그렇지 못하다' 이다. 이는 결국 모든 학문을 하는 사람이 극복할 수 있어야 할 명제가 아닐까 싶다. 다 떠나서 나는 아직 아무나 붙잡고 내 연구가 왜 중요한지 잘 설명할 자신이 없고, 과학을 그래도 남들보다 약간이나마 더 아는 우리들에게 있어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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