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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군중심리 - 귀스타브 르 봉

Loomer 2015. 8. 17. 03:00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군중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내린 책으로, 역사적으로도 파시스트들이 이 책의 이론을 참고하여 자신들의 정치에 활용했을 정도로 꽤 큰 영향력을 가졌던 책이라고 한다. 중요한 건 이 책은 1895년,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사회에도 통하는 구석이 상당히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물론 한 세기의 차이로 인해 달라진 부분도 많고, 무엇보다 작가 본인이 언급하듯 시대가 바뀜에 따라 '특정 언어는 같아도 그 언어가 주는 이미지는 달라지기 마련이라' 그 당시의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과 지금의 내가 이해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군중이라는 개념의 특성 상 그 안에 아무리 뛰어난 지성인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군중 자체는 비이성적이라는(내가 이해하기로는 '아이 같다'에 가까운 듯 하다) 의견이 잘 와닿았다. 이는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정치적 논쟁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군중들은 문자 그대로 '이미지'에만 움직였을 뿐, 그 이미지 안에 함의되어 있는 논쟁의 본질에 다가간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오히려 논쟁의 본질을 밝히지 않는 수를 택하기도 하며, 겉보기에는 코미디 수준으로 보이는 일들이라도 이면에는 이런 비이성적인 군중들에 대한 최적의 대응인 경우가 많은 듯 하다. 다만, 120년 전과 지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군중들이 120년 전만큼 비이성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이러한 군중심리의 본질을 깨닫는 사람들이 120년 전보다는 많다는 것은 분명하며, 이러한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가 과거보다는 커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이성에 근거한 정치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군중심리상에 부합한 방식이 대중들을 이끄는 데에 더 효율적인 듯 하다. 작가 말마따나 한 사상이 세상을 뒤흔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아직은 조금 더 '합리적인 시대'에 다가가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할 듯 하다. (아이러니한 부분은, 작가는 사회주의를 타겟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듯 한데, 정작 소련은 작가의 생전에 건국되어 버렸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공감한 부분은 군중을 구성하는 원동력 중 하나로 '교육'을 꼽았다는 것이다. 나는 현대 젊은이들이 무기력한 이유 중 하나로 교육을 꼽는데, 이는 현재의 교육 자체가 교과서나 시험 범위 이외의 내용은 공부할 필요성 자체가 없다는 식의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고, 토론과 논쟁을 할 기회가 없다시피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난 수능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이 책에'일국의 젊은이들이 받는 교육을 보면 그 나라가 향후에 어떤 나라로 변할지를 알 수 있다. (...) 그러므로 유행하는 교육제도가 군중의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과, 냉담하고 중립적인 군중조차 이상주의자들과 웅변가들이 거는 모든 암시에 기꺼이 순종하는 불평불만세력으로 차츰 변해가는 이유와 과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게 지금의 한국에 딱 들어맞는 듯 하다. 그리고 최근의 입시 제도를 고치지 않고 배우는 양을 줄이는 방향의 교육과정 개편을 보면 이는 미래에도 지속될 듯 하여 걱정이 많다. 한편으로는 이런 고민을 120년 전부터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서구의 민주주의의 역사가 부럽기도 하고, 우리 나라가 120년 퇴보되어 있는가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 이 책과 현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매체가 갖는 영향력의 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가 이 책을 쓰던 당시는 대중 매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여론을 좌우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자 라디오가 막 탄생하던 무렵이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는 통치자들도 결국 대중들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는 정치를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식의 '진단'을 내리고 있으며, 언론도 대중 앞에서 굴북할 것이라는 논조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는 현 시대는 과거보다 언론이 힘이 강하면 강했지, 대중이 언론을 굴복시키지는 못한 듯 하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데, 전 세계의 미디어 재벌들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언론이 아닌 자본의 힘이라고 해야 할 듯 하긴 하다. 최근 들어 SNS의 위세가 대단하긴 하지만, 이런 SNS는 아직까지는 사용하는 계층이 딱 정해져 있기에 신문이나 뉴스와는 달리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는 느낌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어 아직까지는 기성 언론을 이기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언론들이 사실상 대기업들과 강력하게 묶여 있어 정부, 대중보다도 기업의 입김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힘에서 나오는 소위 '입막음'이 군중을 통제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작가가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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