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어제 발생했던 지진으로 내 페이스북은 난리가 났었다. 대부분의 지인이 진앙에서 30여 km 떨어져 있는 포항에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를 볼 수 있었고, 걱정도 꽤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번 일이 그 피해나 사회적 파장만 작았지 세월호 사태의 재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과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아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고, 모든 곳에서 모든 것을 다른 쪽으로 떠넘기는 듯한 모습도 여전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우선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만 주로 해 보도록 하겠다.
1.
학교 사람들에게서 많이 들어왔던 지적인데, 재난문자가 지진이 일어나고 꽤 뒤에 도착했다고 한다. 수도권에 있는 나한테는 아예 문자가 오지 않기도 했고. 지난 몇 달간 매일 폭염 경보로 문자가 울려대던 전화가 이런 일에는 먹통이었으니 많은 사람들의 분노도 이해가 간다.
다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왜 재난문자가 늦게 도착했는가?'일 것이다. 기상청에서는 지진 발생 직후 아무리 늦어도 1분 안으로 속보를 요청했다.[링크] 지진을 '예보'하는 기술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고, 현존하는 가장 빠른 지진 경보 시스템인 일본의 긴급지진속보도 P파를 빠르게 감지하여 S파가 오기 전에 경보를 내리는 방식이라 내륙에서 발생했던(=진앙이 가까운) 최근의 구마모토 지진에서는 경보를 내린 시간만 따지면 이번 지진과 그렇게 차이가 크지도 않다. 물론 수 초의 사이로 생사를 가르는 것이 지진이니 이런 차이도 중요하지만. (여담으로 많은 기사들이 일본의 시스템을 '지진보다 먼저 오는'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고 있는데, 이건 기자들이 멍청하거나 자극적인 글을 쓴다고밖에...)
2.
결국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런 조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이다. 문자가 늦게 도착한 것은 담당 공무원이 속보를 받고 일일히 지역을 선정하여 수동으로 문자를 보내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크고, 그것도 바로 발송되는 것이 아니라 몇 단계의 보고체계를 거쳐야 한다고 한다.[관련기사] 당연히 자동화되어있을 줄 알았던 시스템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참... 게다가 통화량 폭증으로 온갖 통신이 먹통이 되었으니 그나마도 늦게 받거나 못 받은 사람도 있는 상황이었고. 카카오톡이야 사설 서비스니 국가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쳐도 통화나 문자가 잠시나마 먹통이 된다는 것은 통신사들이 이번 기회에 개선했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LINE이 흥하는 가장 큰 이유가 과거 도호쿠 대지진 때 유일하게 먹통이 되지 않아서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수정 : LINE은 도호쿠 지진 이후 만들어진 서비스.)
조금 전문적으로 들어가면(말이 전문적이지 기자들이라면 필요할 정보일 것이다.), 지진에 대한 파형이나 어느 지역에서 언제 감지했는가 등의 전문적인 자료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에 대한 접근 역시 턱없이 부족하다. 안 그럴 것 같지만, 국가에서는 이러한 전문적인 시스템을 꾸리고 있고, 웹서비스도 운용하고 있다. 국가지진종합정보시스템(NECIS)이라는 사이트[링크]에서 이러한 시스템에 기반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데이터를 받을 수 있으며, 가속도 데이터 등의 조금 더 세부적인 내용은 (설치 과정에서 환경 변수를 건드려야 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직접 데이터를 뽑아내야 한다. 프로그램이나 웹 서비스 개발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3.
세월호 사태 때 제기되었던 문제 중 하나가 각종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일원화되어있지 않다는 것이었고, 그 이유로 탄생한 것이 국민안전처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원화 노력이 온라인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이번 지진을 예로 들면 관련 사이트만 국민안전처 포털, 국민재난안전포털[링크], 기상청, NECIS, 지진연구센터[링크] 의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일단 사이트 숫자부터가 너무 많고 각자의 목적이 불명확하다. 물론 사이트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안정성 측면에서는 우수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사이트는 지양해야겠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최소한 어느 곳이 더 중요하고 어느 곳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웹 디자인적인 개선이 있거나 트래픽 등을 개선해서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 정보를 합치려는 노력 정도는 해야 한다. 단적으로 국민안전처 포탈에서 제공하는 재난 관련 정보는 국민재난안전포털로 모두 옮기는 것이 두 사이트의 업무를 확실히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나아 보인다.
현재 각 사이트 사이의 정보 흐름은 국가지진종합정보시스템에서 계측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띄우면 기상청이 이를 정리하여 공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안전처에서 경보를 내리는 구조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이 사이트들이 아직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국민안전처에서는 지진 항목에서 '지진가속도계측자료 통합관리시스템'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 및 메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NECIS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기반한 웹 서비스를 잘만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복잡한 설치 과정을 거쳐야 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만 NECIS에서는 베타 버전이나마 (심지어 리눅스에서도 돌아가는!) 통합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옆 부서에서 2.0 버전을 만들어 배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링크로 1.0 버전을 첨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각 사이트 간의 연계도 부족하다. 확실히 각 사이트는 각자의 역할이 있고, 이를 무작정 하나로 합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어느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링크 연결 정도는 잘 해놨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국민안전처에서 지진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기상청으로 이동하려면 재난안전정보 -> 재난유형별정보 -> 자연재난 -> 지진으로 들어간 후 국가지진정보센터 항목을 클릭해야 한다. 링크 이름부터가 NECIS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으며, 접근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이럴 바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사이트 자체도 무거운 국민안전처 포털에서는 행정적인 업무만 제공하고 재난정보는 국민재난안전포털이나 기상청으로 바로 링크를 넘기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이번에 서버 터진 것만 봐도(...) 한편 가장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NECIS는 도메인 주소를 모른다면 국민안전처 -> 기상청 -> 지진연구센터 -> NECIS의 경로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이번 사태 때 대다수가 국민안전처로 접속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이트 간 연계가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4.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개선해야 할 점은 이 정도로 요약된다.
- 긴급재난 문자 시스템의 자동화
- 통신사 차원의 통화 폭주로 인한 먹통 문제 개선
- NECIS 시스템의 전면 개방 및 프로그램 개선(쉽지 않다는 것은 경험자로서 잘 안다ㅠㅠ)
- 국민안전처 사이트의 전면 개편 및 홍보 (재난 정보를 다른 곳으로 전부 넘기고 이를 홍보하기)
마지막으로 느낀 점 하나. 많은 기사들이 이런 류의 사고가 터지면 항상 개선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디를', 그리고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개선하라는 소리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언론이나 국회의원 등의 오피니언 리더라면 조금 더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잡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라하의 묘지 - 정교한 음모론에 관하여. (0) | 2015.11.08 |
---|---|
군중심리 - 귀스타브 르 봉 (0) | 2015.08.17 |
소리바람소화기와 이에 대한 생각들. (3) | 2015.07.17 |
네네치킨 사건과 합리성. (0) | 2015.07.03 |
세계철학사 - 한스 요하힘 슈퇴리히 (0) | 2015.05.10 |
- Total
- Today
- Yesterday
- 국가지진종합정보시스템
- The xx
- 한아세안
- Arcade Fire
- 리뷰
- Youth Exchange Program
- 아이유
- 무한도전
- acoustic fire supression
- My Bloody Valentine
- 세월호
- 세계철학사
- third eye foundation
- 국제교류
- The Bones of What You Believe
- 무한도전 가요제 논란
- 청소년단체협의회
- 국민안전처
- Right Words
- 잔혹영화
- NECIS
- 태그를 입력해 주세요.
- reflektor
- ASEAN-KOREA Future-Oriented Cooperation Project : Youth Exchange Program.
- Chvrches
- 한스 요하힘 슈퇴리히
- 소리바람소화기
- Right Thoughts
- Tame Impalar
- 음악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