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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팔이

이공계학과대탐험

Loomer 2013. 8. 16. 04:12

이제 더 이상 이거와 관련된 추억이 쌓일 확률은 거의 없기도 해서 정리하는 의미로 글을 남겨본다.




이공계학과대탐험.



이런 행사이다.

내가 겪어온 대학생으로서의 방학 중 최소 1/3 이상의 시간을 투자한 기억.

가서 어떤 것들을 하고, 이걸 기획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을 해야 해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볼 사람들의 상상력을 해치지 않고 싶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나란 사람의 개인적인 추억팔이로서 글을 쓰고 싶어서.


이 프로그램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겨울, 내가 고1일 때였다.

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는 공문이 날아왔고, 나는 그걸 기다리고 있다고 재빨리 1순위로 신청했다.

이 때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이 조금 있었던 것 같지만, 이 때만큼은 매몰차게 거절했던 것 같기도ㅋㅋㅋ


그리고 2008년 1월.

드디어 포항에 가게 되었다.

사실 전년도 여름에 물리경시대회(이제는 보지 않는다.)를 보기 위해 포스텍을 한 번 다녀왔기에 살면서 2번째로 가는 포항이었다.

출발 장소를 헷갈려서 새벽 6시경에 서초구 거리를 열심히 헤메다가 출발하는 차를 놓칠 뻔했던 기억도 난다ㅋㅋㅋㅋㅋ




이 때의 사진들도 싸이월드를 뒤져보니까 되게 많다. 하지만 이 정도만ㅋ

다만, 정작 여기서 포스텍에 들어온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2명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 때의 3일간의 경험은 나를 많은 면에서 바꿔놓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3일만에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고,

그렇다고 해서 마냥 노는 것도, 포스텍 홍보 캠프도 아닌, 인생의 등대를 얻는 느낌을 받았던 시간들이었다.

다 떠나서, 난 이 때의 기억만으로 포스텍에 들어와서 바로 알리미에 지원했고, 알리미 15기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7월 말.

나는 행사 참가자가 아닌 행사 주최자의 입장으로서 이 캠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무렵, 나는 미국을 다녀와서 준비 기간에 잘 참여할 수 없었다.

그래도 원래라면 행사 자체를 못할 상황이었지만, 중간에 귀국 일자를 땡겨가면서 어떻게 행사 시작 3일 전에는 포항에 도착!

그나마 내가 행사에 예전에 참가했던 사람이었기에 3일 있던 것 치고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첫 행사 때 만난 친구들과 헤어지기 전에 찍은 사진. 저게 몇 년 전이니.

2008년의 그 시간에는 그저 멋져 보이기만 하던 알리미들의 자리에 내가 서게 되었고, 내가 애들을 이끌게 되었다.

그 사실이 처음에는 되게 소름끼치기도 했고, 애들을 잘 다루지도 못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한다!'라는 말을 이 때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이 때의 기억은 대학 생활의 여러 터닝 포인트 중 하나였고, 

저 때의 인연은 이 친구들이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 때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이번 여름까지 행사를 총 17번 참가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쌓인 추억들은 정말 그 양이 많다.




첫 행사의 단체사진.

이 때 행사를 주최했던 알리미들 중 2013년 여름까지 남은 사람은 이제 나를 포함하여 두세명.

웃긴 건, 이 때 내 고등학교 후배이자 이후 대학 후배가 되는 놈이 와서 난 되게 당황했었다ㅋㅋㅋㅋㅋㅋ




바로 이어서 진행한 2번째 행사 애들.

이 때 알리미 회장님의 모토가 수습들을 강하게 키우자는 식이어서, 우리 15기는 이 때부터 바로 단독 조장을 맡았다! (요즘은 안 그럼..)

그래서 내가 미숙해서 조원 하나를 울리기도 했던 것 같고, 조장이 아닌 하나의 알리미로서도 사고를 냈던 기억들이 꽤 많다.

하지만 신기한 건 여기서 6명씩이나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는 거. 모든 알리미들을 통들어 이 숫자는 드물다.

2011년에 그 녀석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3번째 행사.

과고생들을 데리고 했던 첫 행사.

과고생들은 한 학교에서 여러 명이 오기 때문에 같은 학교 친구들을 떼어놓고 조끼리 뭉치게 하는 것이 꽤 힘들었다.

이 외에도 과고생들은 보통 여러 게임들을 일반고생들에 비해 잘 하는 편이기도 해서 과고생들을 처음 만난 나는 은근히 적응이 어려웠다ㅋ

지금쯤 이 친구들은 뭐하고 있으려나.

현 시점에서 이 행사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여기서 한 명이 내 후배가 되었고, 알리미 후배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얘가 알리미로서 처음 행사를 같이 할 때 기분이 정말 묘했던 기억이 난다.




4번째.

이 때부터 슬슬 내가 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으로 사회자의 자리에 올라간 행사였기도 했고, 정말 내가 행사를 '기획'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알리미는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람들이기에 '조장'만을 할 수는 없고, 항상 행사 진행에 신경을 써야 한다.

여기서 이 '진행'이라는 부분에서 내가 어느 정도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구나라는 느낌을 받게 된 첫 행사.

이 때 애들은 정말 자기들끼리 활발하게 놀았던 것 같고, 여기서 3명은 이후 12학번으로 입학했다.

그 3명 모두 되게 괜찮게 생각했던 친구들이라, 지금도 꽤나 아껴주고 싶은 녀석들이다ㅋㅋ


그리고 이 3~4번째 행사 동안 1학년 알리미로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나 남겼으니 바로 '알쇼'!



전통적으로 겨울행사 때는 1학년 알리미들이 그들만의 공연을 하나씩 기획한다.

이 당시의 우리들은 당시 유행하던 '남녀탐구생활'을 컨셉으로 잡아 옴니버스식의 '대학탐구생활'이라는 연극을 했다.

지금 보면 되게 유치하기도 하고, 오그라드는 기억이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때의 기억도 내 대학 생활의 추억 중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15기를 정말 최고의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2학년.

이공계학과대탐험에 있어서 행사의 '주축'이 되는 멤버는 2학년이다.

행사 동안 진행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의 팀장을 맡는 알리미들이 모두 2학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위의 선배들도 열심히 참여해서 많은 걸 도와주지만, 실질적인 각 코너들의 기획과 집행은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2학년이 맡는다.

그러다 보니 2학년 알리미들은 '조장'이라는 행사에서의 또 다른 역할에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기도 하는데,

행사 진행을 하느라 자기 조 애들을 잘 챙겨주지 못해서 애들한테 많은 미안함이 남기도 한다ㅠㅠ


내 경우는 '과학콘테스트'라는 코너의 팀장을 1년 간 맡았다.

솔직히 지금 돌이켜 보면 팀장 일을 되게 못했던 것 같아서 당시의 알리미들, 애들한테 미안함이 너무 많다.

2학년으로서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실수도 꽤 했던 것 같고, 나이에 맞지 못한 행동들을 보여줬던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가장 열심히 굴렀던 시기이기에 '일'로서의 행사가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시간은 2학년 시절인 것 같다.



5번째 행사 애들.

그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힐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행사였다.

2010년 여름행사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많은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행사 준비가 잘 안 되는 스트레스도 있었고, 전 학기에 남은 많은 스트레스들을 다 풀지 못하기도 했고.

그런데 신기하게 그 스트레스를 저 사진 속 친구들이 다 없애주었다.

그래서 셋째날 해를 보면서 저 친구들에게 정말 목멘 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여기서도 2~3명 정도 후배로 들어온 것 같은데, 내가 정말로 아끼눈 후배 중 하나가 여기 출신이다.




6번째 행사.

여기는 개성 강한 친구들이 되게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하는 '내 조원들 중 최고의 또라이'로 기억되는 친구가 이 행사 출신이다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친구는 결국 내 후배로 들어왔고, 지금은 정말 어른스럽고 멋진 녀석으로 성장했다. 

이 쯤부터 대충 행사를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덕에 이 행사는 편하게 했다.




2011년 겨울에 진행한 과고생 대상의 7번째 행사.

다 필요없고 2011년 겨울은 그냥 폭설밖에 기억이 안 난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것 때문에 행사 진행에 꽤 많은 차질이 있었다.

알리미들은 행사 당일에도 제설작업을 해야 했고, 학생식당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고생을 많이 한 행사였던 것 같다.

우리 15기가 회장단까지 하게 되면서 온전히 우리 기수가 주도한 첫 행사이기도 했고, 

우리 위의 선배들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기도 해서 심적으로도 부담이 좀 있었다.

다만 애들의 게임 실력 하나만은 정말 출중해서, 그 덕에 밤에는 정말 열심히 놀았다!




8번째.

행사를 많이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 때의 조원들이 제일 좋았다'와 같은 순위가 생기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때 애들은 첫 행사 이후로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고, 첫 행사만큼은 아녀도 연락이 잘 되는 친구들이다.

일단 애들 하나하나가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재미있었고, 내 모든 행사를 통들어서 애들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다만, 애들은 정말 재밌고 좋아서 다 묻어버리고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힘들었던 행사였다.

직전 행사 때의 강행군에 의한 피로가 쌓인 상태에서 바로 이 행사를 시작했고,

이 무렵에는 내년을 위해 후배들에게 이런저런 인수인계를 위한 교육을 염두에 주면서 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6기들에게 되게 까칠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보면 그저 미안하다ㅠㅠ)

무엇보다도 이 무렵이 알리미들의 숫자가 가장 적었던 시기인지라 거의 모든 알리미들이 1인 다역을 해야만 했다.

(조장 자리를 다 채우기 위한 10명이라는 숫자를 모으는 것도 힘든 시기였다.)

그래도 이 때의 녀석을 덕에 그 힘든 것들 다 잊고 행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3학년.

3학년부터는 사실 내가 행사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다.

한창 학교 밖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시기이기도 했고, 팀장 일이 끝나서 행사 진행을 실질적으로 좌우하지도 않게 되어서.

확실히 처음 이 캠프를 준비하던 시기에 비하면 그 초심이 많이 사그라들었음을 느끼는 시점이기도 했다.

사실상 이 때부터는 행사 당일이 아닌 준비기간에는 그다지 많이 참여를 못 하게 되었다.


그래도 3학년이 행사를 함으로서 좋은 점이 있다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조원들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무렵이 되면 자잘한 일들은 절반 이상이 후배들의 몫이 되어, 후배들에게 미안하지만서도 나는 조원들과 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쯤 되면 조장으로서의 스킬은 거의 만렙을 찍은 상태라 애들을 내 페이스대로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ㅋㅋㅋ




9번째 행사 애들.

2011년 여름행사는 내가 국토대장정을 마치자마자 진행했던 행사인지라, 나는 흑인알리미로 행사 여기저기서 개그의 대상이 되었다ㅋㅋㅋ

이 때는 그 메리트 아닌 메리트를 최대한 살리면서 행사를 꽤 재밌게 진행했던 것 같다.

여기서는 3명이 13학번으로 들어왔는데, 모두 내 과 후배가 돠었다........

그래서 얘네들이 입학한 뒤에 밥을 사주면서 그것 때문에 되게 신기했던 것 같다ㅋㅋ

'일'의 입장으로서 보면, 아마 내가 사회자로서 무대에 섰던 마지막 행사가 이 때였을 거다.

확실히 내가 할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저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지만.




10번째 행사.

단독조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뛴 행사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 중 하나.

무엇보다도 남자애들이 전원 또라이들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게임에서 이렇게 많이 당했던 행사는 이 때가 유일한 것 같다ㅋㅋㅋㅋ

이 때 애들도 지금까지 연락이 되고 있고, 잘 하면 조만간 같이 놀러갈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학교에 온 한 친구가 현재 수습 알리미가 되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정말 홀가분하게 진행했고, 아쉬움이 가장 적게 남은 행사라 기억에 남는다.


여담으로, 알리미들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들의 인연을 이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이 때까지는 싸이월드 클럽을 이용해서 그 인연을 이어나갔다.

이 행사가 싸이월드 클럽을 이용했던 마지막 행사이다. 이 뒤로는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게 되었다.


11번째, 12번째 행사는 당시 총학생회 일을 하게 되어서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다만 저 당시 행사에 참여하는 알리미들 중 내가 맏형을 맡았는데, (정작 현 시점에서는 내가 맏형이 아닌게 아이러니하다ㅋㅋㅋㅋ)

그것 때문에 총학생회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무감으로 꽤 열심히 나갔던 것 같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못했을 조장 일도 비록 조장은 아니어도 부조장의 입장으로서 1학년 애들 밑에 끼어서 했던 것 같다.

다만 어디까지나 부조장의 입장으로서 첫 조장을 맡는 1학년들을 도와주는 것이 일이었기에,

그 때의 애들은 아마 나보다는 조장을 맡았던 알리미들을 더 기억할 것이고, 나도 그 친구들과의 유대감은 다른 행사들에 비해 되게 적다.

(그래서 애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이 행사들에 한해서는 그 의미가 적은지라 굳이 올리지 않았다.)

이후 결과적으로 내가 총학생회 일에서 중도하차했음을 생각해 보면, 이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2012년 여름행사부터는 행사 당일에만 참석하는 식으로 행사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제 '준비'의 과정에서는 더 이상 내가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그 점에서 후배들이 만든 행사에 숟가락만 얹는 것 같아서 미안함도 많았다.

다만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입장으로서 생각해 보면, 대학 입학 이후 가장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시점이 저 때였던지라,

휴학생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행사를 위해 포항에 내려왔던 시기가 저 시기이다.

그만큼 행사라는 것이 내게 있어서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3번째 행사는 처음으로 조장도 부조장도 맡지 않은 첫 행사였다.

행사가 끝나고 알리미들이 마지막 멘트를 하는 자리에 올라가지 않은 첫 행사이기도 했다.

그냥 말 그대로 사고가 터지면 땜빵하거나, 조용히 행사의 주연급 알리미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 전부.

나는 행사 기간에는 생각보다 일이 많고 외로운 회장(16기 후배였다)을 도와주거나 찍사를 맡았고,

조가 없다는 점을 역으로 이용해서 이 조 저 조 들어가서 잠시 놀아주는 방식으로 애들을 재밌게 해 주기도 했다.


사실 이 무렵의 슬럼프를 생각해 보면, 내가 조장을 맡았어도 애들을 잘 못 대해줬을 것 같다.

행사에 있어서 조장은 애들과 마냥 놀아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애들의 멘토가 될 수 있는 일종의 '진지한'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데,

이 무렵의 나는 도저히 후자의 역할을 수행할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 행사를 통해 행사의 열기를 느껴서 내가 살아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14번째 행사는 조장을 맡기로 결심했다.


 


14번째 행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조장 후배를 데리고 행사를 했다.

다른 알리미들에 비해 단독으로 조장을 많이 맡았던 나인지라 이 부조장 녀석을 잘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웠던 행사.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정말 열심히 날뛰었던(??) 행사였던 것 같다.

이 행사도 5번째 행사처럼 나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 때 친구들은 아직 고3인데, 확실이 요즘 들어 입시 관련으로 나한테 연락이 많이 온다ㅋㅋㅋㅋㅋ




올해 1월에 했던 15번째 행사.

조장 역할로 참여한 마지막 행사이다. (뭐 일단은 18기 후배가 조장이고 내가 부조장이었지만ㅋㅋ)

사실 이 때는 내가 조장을 더 이상 맡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냥 평소처럼 열심히 돌아이 짓을 하면서 굴렀다.

기억나는 건, 이 때와 내가 첫 행사를 했던 시절을 비교하면서 이공계학과대탐험이라는 행사도 상당히 많이 변했다는 걸 실감했던 것 정도?

다만 이 때가 내가 조장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행사라는 걸 알았고 행사에 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장으로서의 내 역할을 홀가분하게 마치지 못한 느낌이 결국 지금까지 남아버렸기에.


그리고 얼마 전까지 했던 16, 17번째 행사. (2013년 여름행사)

이제 나는 조장을 하기에도 너무 고학번이 된지라, 더 이상 조장을 맡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되게 아쉬웠지만, 이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은 내가 더 잘 알기에 참아야 하는 것이 맞았다.

그 대신, 더 이상의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나는 행사를 계속 지켜보고 지켜보고 지켜보았다.

하나의 순간 순간 하나를 기억하고 싶었고, 그 순간 하나 하나를 잊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되게 무섭더라. 사람을 그렇게 센티멘탈하게 만들고.

17번째 행사는 심지어 마지막 날이 대학원 면접과 겹치기까지 했지만, 면접장에서조차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내 행사 Life는 이번 여름을 끝으로 그 막을 내렸다.

생각해보면 정말 많은 기억들이 남아 있고, 그 기억의 많은 부분들이 지금의 나를 받쳐주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매 행사마다 난 마지막 멘트에서 '저 역시 행사에 참여한 여러분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워갑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정말 맞는 것이, 지금까지 나를 거쳐간 수많은 고등학생들을 통해 오히려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들 덕분에 더 성숙해질 수 있었고, 더 튼튼해질 수 있었으며, 심지어 그들이 나를 치유해주기까지 했다.


이제 더 이상 행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되게 아쉽다.

하지만 이제 미련은 없다. 내 시간은 이제 끝났고, 난 그 시간 동안 분에 넘치는 선물들을 받았으니까 충분히 만족한다. 더 바라면 욕심이지.

이 글을 통해 나를 거쳐간 수많은 고등학생들(이제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생들이겠지만)에게 감사를 다시 한 번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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